Ⅰ
모래내 시장 새벽 바람 우르르 쏟아지는 골목 아이가 굴러나온 양파의 껍질을 벗기고 있다. 겉 껍질을 벗기고 속껍질을 벗기고 두터운 알맹이도 벗기고 자꾸만 벗겨낸다. 아이는 양파를 끝까지 벗겨내고 벗겨낸 것은 껍질이니까 버린다. 햇살 드는 모래내 시장 텅빈 아이의 손바닥엔 알맹이는 모두 버려지고 양파의 껍질만 남아서 두툼하게 빛나고 있다
Ⅱ
아이가 벗겨낸 속껍질 반달이 열린 창 틈 엿보이는 밤이면 나는 남이 있거나 말거나 옷을 벗는다. 블라우스도 벗고 거기 묻은 부끄러움도 벗는다. 벗는 것은 발치로 던져둔다. 갑자기 발을 뻗으면 블라우스가 밟힌다. 부끄러움이 비명을 지른다. 그래도 나는 옷 벗기를 멈추지 않는다. 스타킹도 벗고 간지러움도 벗는다. 블라우스며 부끄러움이며 스타킹이며 간지러움이며 그럼 밤이면 알맹이는 모두 버려지고 버려진 나의 껍질만 남아서 투명하게 눈 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