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냉장고로 걸어가 밀푀유를
가지고 옵니다. 얇은 페이스트리
사이에 커스터드 크림을 겹겹이
발라 차곡차곡 쌓아 만든 디저트입니다.
샌드위치와 어쩐지 닮은 것도 같군요.
차곡차곡 슬픔이 쌓인 삶이라.
푸른 접시에 밀푀유를 담아 손에
들고 걸음을 옮깁니다. 이번에는
직접 비글 씨의 앞에 접시를
내려놓고 뒤로 물러납니다. 잠시
접시를 내려다보던 비글 씨가 저를
향해 고맙다는 듯 고개를 끄덕입니다.
“모르모트 씨는 모르겠지만,
비글 씨는 사람들과 어울리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비글 씨가 작은 포크로 얇은
파이 시트를 누르자 파사삭-
소리와 함께 밀푀유가 부서집니다.
“말을 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이 녀석은 최고의 작가라오!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볼 줄
아는 특별한 눈을 가지고 있지!”
아, 그렇군요. 그런 일을 한다면
말을 하지 않고도 충분히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
“주방장의 눈에는 저 녀석이
우스워 보일 수도 있겠지.”
“그런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만.”
“우리를 업신여기는 놈들은
실험실 바깥에도 많았소.
개와 모르모트가 같이 다니는 것도
이상한 데다 저 녀석이 말을
하지 않으니 바보라고 생각한 거지.”
어디에서나 텃세라는 건 존재하니까요.
“하지만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습게 여기지 마시오.”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이 녀석이
실험체가 된 이유는 사람을
가장 잘 따르는 동물이라서였소.”
“…….”
“내가 작고 약한 몸 때문에
실험체가 된 거라면,
이 녀석은 여기 이 심장 때문에
실험체가 된 거지. 사랑이
넘치는 심장!”
부서진 밀푀유의 단면에서
크림이 흘러내립니다.
“그러니 이 녀석이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말이지. 일종의 저항이라오.”
“저항…?”
“그래요. 저항. 아무래도 비글은
그런 일을 겪더라도 결국 인간을
따르게 마련이거든. 게다가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도
꽤 많은 편이니까.”
저항이라. 비글의 침묵을
해석하는 독특한 모르모트 씨의
생각에 완전히 동의하기는
힘들지만 어렴풋이 어떤
의미인지는 알 것 같기도 합니다.
“나는 이 녀석이 다시는
말을 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항은 아주 근사한 거거든. 안 그렇소?”
“글쎄요…….”
모르모트 씨는 생각에 잠긴
저를 바라보더니 껄껄껄
호탕한 웃음을 터트립니다.
“고양이도 꽤 저항정신이
넘치는 동물일 텐데?”
“고양이가요?”
“사람의 말 같은 건 듣지
않기로 유명하잖소?”
“아. 그건 저항이라기보다는
자연의 법칙 같은 거랄까요.”
“자연의 법칙?”
“인간은 아무래도 고양이보다
연약한 동물이니까요. 제가
그들의 말을 따르는 건 순리에
맞지 않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요?”
“진심이 아니라 진실입니다만?”
모르모트씨가 다시 한번 껄껄
웃습니다. 영문을 알 수 없지만
뭐 꽤 이 시간이 즐거운가 보군요.
“아무튼 나는 그런
저항정신을 존중하지!”
“그렇군요.”
“모두들 상처를 꼭 극복해야만
하는 문제처럼 취급하지만,
어떤 상처를 평생 간직하는
것은 일종의 의지거든! 그
건 바로 저항이지.”
모르모트 씨는 따뜻한 눈길로
비글이 다 먹어치운
빈 접시를 바라봅니다.
“함께 있는 동안에는
이 녀석이 절대 입을 열지
않더라도 괜찮소. 음식값은
나 혼자서도 충분히 지불할
수 있으니까.”
네, 값은 이미 지불하고도
남을 만큼 충분합니다.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간다고
해서, 녀석이 인간을 용서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도 없어.”
모르모트 씨는 비글 씨의 등을
툭툭 두드립니다. 비글 씨는
포크에 남은 크림을 마지막까지
깨끗하게 핥아먹습니다. 식당에
들어올 때만 해도 꽤나 낯설어
보였던 그들의 조합은 다시
보니 퍽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좋은 친구군요.”
모르모트 씨가 짐짓 거드름을
피우듯 어깨를 으쓱 들어 올립니다.
“친구라니, 우린 함께 사선을
넘은 전우라오!”
그 물색 없는 얼굴에 저도
모르게 피식 미소를 짓고
말았습니다.
“이 정도면 샌드위치값이
됐을까?”
“밀푀유값도 있습니다만.”
“보기보단 욕심이 많은
성격인가 봐?”
샌드위치 같은 삶이라.
오늘 식사의 값은 그것으로도
충분합니다.
모르모트 씨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몸을 일으켜 조리대를
향해 걸어갑니다.
“삐졌소? 주방장?”
장난기를 머금은 목소리를
들으며 주방에서 가장 깨끗한
잔 두 개를 꺼냅니다.
“값은 다 치렀으니 이제
그만 입을 좀 다무시죠.”
“삐졌구만!”
작약차를 투명한 잔에
가득 담아 두 손에 듭니다.
“그렇게 옹졸해서야 어떻게
식당을 운영한다고!”
생쥐 아니, 모르모트 씨
곁을 지나쳐 비글 씨에게
걸어가 따끈한 김이 피어오르는
작약차를 건냅니다.
“이 차는 저항정신에 대한
응원이라고 해 두죠.”
빨간 작약차를 바라보는
비글 씨의 입술은 여전히 파르르
떨리고 있었지만, 그 끝에 작은
미소가 스쳐 지나가는 것을 저는
놓치지 않았습니다.
“나도 주시오!”
생쥐 아니 모르모트 씨의
재촉을 들으며 슬쩍 가게
바깥을 바라봅니다.
수많은 사연들이
차곡차곡 겹쳐진,
샌드위치 같은 하루가
지나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