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걱거리는 나무 문이 열리는 순간,
늦가을의 한기와 함께 안개가 가게 안으로 밀려 들어옵니다.
뒤에서 꼬리털을 움켜쥐는 꼬마 녀석 때문에
심기가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었지만,
능숙한 고양이는 이 정도 일에 놀라지 않습니다.
손님을 불편하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오랜만입니다, 주방장님.”
검은 재킷과 호박처럼 황금색으로 빛나는 눈동자.
몸태는 날렵하지만, 식당 입구를 가득 채울 만큼
큰 키, 우람한 어깨, 바로 흑표범 씨입니다.
같은 고양잇과라고는 해도 덩치에서부터 차이가 상당해서,
이럴 때마다 우리가 같은 종으로 분류되어도
좋은 건지 의심스럽습니다.
“오실 줄 알았습니다. 유난히 안개가 짙은 날이군요.”
나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인사를 건넵니다.
쭈뼛거리며 제 뒤에서 기어 나온 꼬마 고양이가
흑표범 씨에게 고개를 꾸벅 숙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고양이 식당에서
새로 일하게 된 알바생이에요.”
“아, 예. 잘 부탁합니다.”
가게 안에 매달린 등롱 덕분에 흑표범 씨의 검은 털이
벨벳처럼 빛나 보입니다. 꼬마 녀석이 반드르르
윤기가 흐르는 흑표범 씨의 털을 넋 놓고 바라봅니다.
“날을 잘 잡으셨습니다.”
마침 흑표범 씨에게 제격인 식재료가
새벽에 들어온 참이거든요.
태양이 달에 가린 일식의 날 벽조목 덫으로 잡은
흰 사슴 고기. 입에 넣는 순간
혀끝에서 녹을 정도로 부드러운 고기입니다.
20년에 한 번 볼 수 있을까 말까 한 귀한 식재료라
중요한 손님에게 대접할 요량이었는데,
마침 흑표범 씨가 들러주었으니
선보이지 않을 수 없겠군요.
“마침 오늘 사슴 고기가 좋은 날입니다.”
어째서일까요? 흑표범 씨의 안색이
하얗게 질리는 것 같습니다. 꼬마 녀석이
이유를 묻는 눈으로 저를 바라봅니다.
사슴 고기라면 흑표범 씨가 매번 고양이 식당을
찾을 때마다 빠지지 않고 주문하던 음식입니다.
“저는….”
말을 잇지 못하고 흑표범 씨가 한 손으로
이마를 감싸 쥡니다. 꽤 고민이 많아 보이는 얼굴이군요.
그렇습니다. 오늘은 식사를 하기 전에 이야기 값부터
먼저 치를 생각인가 봅니다. 이럴 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것이 예의겠죠.
“주방장님은 사랑을 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예상치 못한 질문입니다.
저처럼 근사한 고양이를 흠모하는 고양이들이
어떻게 없을 수 있겠느냐마는
지금은 제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닌 것 같군요.
흥미로운 눈으로 저를 바라보는
꼬마 녀석의 시선을 무시한 채 짧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한때 하루가 멀다고 고양이 식당을 찾아오던
흑표범 씨가 이렇게 오랜만에 찾아온 이유가
이 질문과 연관이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드는군요.
“여느 때와 같았어요. 언제나처럼 배가 고팠고,
굶주렸고, 본능이 이성을 지배했습니다.
고양이도 본래는 육식동물이니 공감하시겠죠?”
뭐, 대충은요.
“식욕이 치밀어 오를 때는 세상이 회색으로 보이고
굶주림이 지속되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허기를 채울 식사로만 보이죠. 그날도 그랬어요.
피 냄새를 쫓아 숲을 누볐죠,
도착한 곳에 배를 채우고도 남을 먹이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저는 조용히 흑표범 씨의 앞에
만월주 한 잔을 내려놓습니다.
마음속의 고통을 더는 데 향기로운
만월주만 한 것은 없으니까요.
만월주를 단숨에 들이켠 흑표범 씨가 말을 이어갑니다.
“올가미에 사슴 한 마리가 걸려 버둥거리고 있었고,
피가 흐르고 있었어요. 배가 고팠습니다. 분명 그랬어요.
하지만 그녀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굶주림이 사라졌어요.
회색이었던 세상에 무지개가 떠오르듯이
사방이 총천연색으로 바뀌었습니다.
빛이 들고 햇살이 내리쬐고, 모두 괜찮아졌죠.”
“그렇군요.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어리석은 일이라는 걸 알아요.
저는 육식동물이고, 흑표범이고,
네, 그저 그녀는 한 마리의 사슴이죠.”
이렇게 오랫동안 생을 반복해왔지만,
저는 지금까지 현명한 사랑이라는 것을
목격해본 적이 없습니다. 인간의 사랑이든,
고양이의 사랑이든, 흑표범의 사랑이든,
사랑은 언제나 어리석고 무의미하고 바보 같은 감정이죠.
“그날 이후로 고기는 입에 댈 수가 없더군요.”
“이해합니다.”
“제가 이상한가요?”
“글쎄요. 법을 어긴 것도 아닌데, 이상한 일일까요?”
흑표범 씨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하지만… 보통의 표범이
사슴을 사랑하는 일은 없잖아요.”
인간이건 동물이건, 자신이 무리와
다른 행동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첫 번째로 느끼는 감정은 두려움입니다.
하얀 도화지 위에 찍힌 검은 점이 된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보통이라… 세상에 그런 것이
실제로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요.
“달이 뜬 밤에만 영업하는 고양이 식당의 주방장이
대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군요.”
흑표범 씨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제가 괜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떻게든……,
노력을 한다면 사슴이 아니라
다른 동물이라도 어떻게든 먹어-.”
“잠시 기다려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