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 나로선 처음 느껴보는 기분에
마음은 간단하게 울렁거리고
바다에 이는 것을 파랑이라 하니
사람에 이는 이것은 사랑이라 하자
도저히 잠들 수 없는
지독한 열대야 탓에 아득한 무더위 탓에 계절 탓에
기대어 모른 척해 온 감정이
범람해 나를 덮어
내가 어떤 말로 여름을 그려도
그것의 색은 바래지 않고
외려 교정도 교실도 하굣길도
모든 것을 집어삼켜서 다 물들여버려
똑같이 어떤 말로 너를 덧칠해도
네 존재는 덜해지지 않고
오히려 너와는 관련 없던 물건도 장소도
모든 것을 그러안아서 네 이름으로 물들여버려
뒤늦게 눈을 감아도 잔상은 망막의 위로 머물러
네가 웃어 보이므로, 이윽고 전부 파랑이 되어버려
파란 하늘에 길게 걸쳐진 비행운이
기억에 십자선을 그어 새기고
그로써 나는 언제가 되었든지
이 풍경을 있던 그대로 그려 볼 수 있지
도무지 꺼지지 않는
소란한 매미 소리와 망연한 달음 소리와 물소리가
기어이 모른 척해 온 감정을
북돋아 나를 덮네
내가 어떤 말로 여름을 그려도
그것의 양은 바뀌지 않고
외려 도로도 도랑도 들풀 꽃도
모든 것을 집어삼켜서 다 물들여버려
똑같이 어떤 말로 너를 덧그려도
네 존재는 덜해지지 않고
오히려 너와는 관련 없던 물건도 장소도
모든 것을 그러안아서 네 이름으로 물들여버려
어떻게 떠올려봐도 너는 푸른 이미지로 맴돌아
네가 웃어 보이므로, 이윽고 전부 파랑이 되어버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