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과 눈물 사이
- 권 일 송 詩
바람이 나무 끝에 매달려
파아란 불을 켠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스치면서
거의 소리나지 않게
여인의 하얀 목덜미를 간질이고
아무도 가담하지 않은
이 시대의 양심을 뒤 흔든다
모딜리아니의 색채보다 부드럽고
김수영의 시보다 단단한
우리들의 사랑과 절망
언제 어디서나 네 눈동자는 외롭고
거리의 눈물꽃은
자지러들지 않는다.
한번 얼어붙은 가슴들은
쉬이 녹지 않는다
냉이와 씀바귀가 자라는
대지의 봄이 밀물해도
자유에 대한 진술은
상기 눈 멀었는가.
바람 속에 휘청거리는
서울의 골목길이 비에 젖는 다
이제는 외상술을 마시고
보들레노에 취한 시인들도 없다.
모두 다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진다.
풀무질 하는 성난 가슴들을 보듬고
헛되고 헛된 꿈에 밀린다.
그러나 아직
바람이 목을 맸다는 얘기는 못 들었다.
쓸쓸한 한줌의 민들레 바람이여
뭔가 시나브로 가슴에 조여드는
경계선이 나를 미치게 할 때까지
흣한 민들레의 울음으로 흘러가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