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고래의 비밀

오늘
Album : 어서오세요, 고양이 식당입니다 5
Composition : 오늘
Composing : Mate Chocolate
인간에게 범고래는 매우
친화적이며, 영리한 동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느 유명한
영화가 그 좋은 이미지에
한몫을 했죠. 하지만, 물속에
사는 다른 생물들에게 녀석은
그리 가까이하고 싶은 존재가 아닙니다.
아주 사납고, 포악한 본성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특히나 물개라면, 범고래와는
천적 관계에 있는 동물입니다.
물론 모든 동물은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것이 도리이고, 모든 생명은
다른 생명의 천적이자 먹이입니다.
특별한 일은 아니죠. 특별하다면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고양이가 특별할 뿐.
하지만 이 세계에서는 천적끼리
만나는 경우에도 서로 거리를 두며
지낼 뿐, 크게 문제가 되는 일은
없습니다. 사고라도
일으켰다간 더는 인간의 모습으로
지낼 수 없을 테니까요.
게다가 구태여 사냥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한 음식들이 있습니다.
고양이와 쥐가 만나도, 뱀과
개구리가 만나도 그저 스쳐 지나갈 뿐,
이 세계에서는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범고래는 다릅니다.
“제 발주서를 대신 작성해주겠다며,
며칠 치 잡무를 모조리 떠넘기던
녀석의 얼굴이 떠올랐어요.”
녀석들은 애초에 먹기 위해
사냥을 하는 동물이 아닙니다.
무료함, 지루함을 느낄 때 사냥을 하죠.
그 대상은 역시, 물개일
때가 많습니다. 깊은 바다를
헤엄치다 권태로워질 때면,
녀석들은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물개를
골라, 죽기 직전까지 괴롭힌 후에
먹지도 않고 버려두고 떠납니다.
“자기가 최근에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모니터를
계속 보고 있으면,
과호흡이 온다고 하루만 일을
도와달라고 부탁했었죠.”
야생에서는 흔하디흔한 일입니다.
인간들의 눈에는 한없이 귀여워
보이는 얼굴로 거리낌 없이
잔혹한 짓을 저지르는 것.
“녀석이 떠넘긴 일을 처리하느라
야근까지 할 만큼 바빠서
저도 깜빡 잊고 있었던 거예요.”
“억울했겠군요.”
“네. 하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일부러 모른 척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조금 억울하기는 하지만, 미안하단
한 마디면 넘어갈 수도 있었죠.”
먹잇감이 천적에게 대항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압도적인 공포를 이겨내야 하고,
모든 감각을 곤두세워야 하죠.
그런다고 하더라도
좋은 결과가 뒤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나,
질 확률이 더 높습니다.
“그렇잖아요. 부장님이 역정을
내고 있는데
끼어들어 저를 변호하기도
어려웠을 테니까. 사실 비슷한 일이
몇 번 있었던 것 같긴 했는데…,
다 제가 과민한 탓이라고
생각했어요.”
“이야기를 해보셨나요.”
“네. 발주서를 들고 갔어요. 너무
매섭게 쏘아붙이지 않으려고
표정까지 가다듬었죠. 어쨌든 함께
입사한 직원들이 모두 퇴사하고
하나밖에 남지 않은 동기였어요.
예전엔 아주 친했기도 했고…….”
물개와 범고래가 친했다니,
믿기지 않는 이야기군요.
저는 식재료를 칼로 썰며
물개 씨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커피를 들고 들어오는 녀석에게
발주서를 내밀자 녀석이
이렇게 말했어요.”
서걱서걱 예리한 칼날이
식재료를 거침없이 베어냅니다.
“좀 제대로 확인해 볼 순 없었어?”
전등에서 쏟아지는 빛이 칼날에
반사되어 날카롭게 번뜩입니다.
“어떻게 매번 이렇게 일을
그르치냐고. 덩달아 자기까지
부장님한테 한 소리를 들었다고.
너를 변호해주는 것도 이젠 지쳤다고.
자기가 대신 한 소리를 듣는 건
상관없지만 나중엔 다른 직원들까지
피해를 볼까 걱정이 된다고.”
“…….”
“진심으로 마음이 아파서 하는
말이랬어요. 저를 이렇게 염려하는
사람이 또 누가 있냐고요.
사과는 필요 없다며 다음부턴
이런 실수는 하지 말라고
선심을 쓰듯 말하고 가버리더라고요.”
커다랗게 조각난 채로 도마 위에
쌓인 식재료를 바라보던 저는
물개 씨를 향해 물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나요.”
“모욕적이었어요. 참을 수가 없었어요.
달려가서 녀석을 붙잡았죠. 그리고,
이건 네가 내게 대신해달라고
한 일이 아니냐고 외쳤어요.
다 너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냐고
화를 냈어요.”
어쩌면 범고래는 일부러 발주서를
틀리게 작성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물개 씨는 모르고 있겠지만요.
친했다고요, 물개와 범고래가?
아마 범고래는 한순간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언젠가 물개 씨가 곤경에 빠졌을 때,
잡고 있던 손을 놓아주며 추락하는
모습을 바라보기 위해 견고한
신뢰를 쌓았던 것뿐일 겁니다.
먹지도 않을 물개를 꼬리로
허공에 차올리며 즐거워하던
야생에서처럼. 그저 모든 것은 재미를 위해서.
세상에는 누군가가 고통에
빠진 모습을 보며 기쁨을 느끼는,
명랑한 악의에 가득 찬 존재들이 꽤 많으니까요.
“그 뒤로 절 공격한 건 범고래가
아니었어요. 다른 직원들이었죠.
실수를 남에게 덮어씌우는 건
정말 비열한 일이라며 다들
저를 비난했어요. 엉망진창이었죠.
범고래는 그저 불쌍한 얼굴을 하고
절 바라보기만 했어요.
그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망가질 수 있었죠.”
물개는 남은 산호주를 모두 잔에
붓고 한꺼번에 들이켰습니다.
“아시죠. 범고래는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는데 아주 능숙한
동물이라는 걸.
녀석을 마주한 채 사람들의
비난을 받고 있으니, 제가 그냥 좀
멍청한 물개로 느껴지는 정도가 아니라,
조립 과정에서 뭔가 크게 잘못되어
폐품처리가 되어버린, 쓸모없는
장난감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
“여긴 인간 세계잖아요.
물에서의 악연이
여기까지 이어진다는 건 좀
잔인한 거 아닌가요.”
물개 씨의 얼굴이 퍽 슬퍼 보이는군요.
이런 순간에는 대답을 하지 않는
편이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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