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실험실에서 왔습니다.”
모르모트 씨는 버터벨에 담긴
매끈한 버터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나는 B실험실 창가 쪽 박스에,
비글은 그 맞은편 케이지에 있었지요.”
이야기를 들으며, 버터를
큰 숟가락에 떠서 마른 빵에 바릅니다.
사각사각 빵에 버터를 바르는 소리
사이로 모르모트 씨의 목소리가
밀려들어 옵니다.
“저 녀석은 어미 젖을 떼기도
전에 실험실에 왔소. 거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인간들에게
끝없이 말을 걸더군요. 알다시피
비글은 사람을 아주 좋아하지 않습니까.
녀석은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만
보면 지치지도 않고 말을 걸어 댔소.
딱 비글 같았지. 매일 사료를 줘서
고맙다느니, 같이 놀자느니, 밤에도
같이 있어 주면 안 되냐느니,
산책을 하고 싶다느니, 아주
시끄러웠지요.”
버터로 코팅한 빵 위에
마멀레이드를 가득 펼쳐줍니다.
“물론 대답해주는 사람은 없었소.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말이지.
계속해서 자신의 말이 비껴가는
경험을 하고 나니 녀석의 말수도
점점 줄어들더군. 어느 날부터는
아예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말았소.”
향기로운 나무딸기향을 맡으며,
다른 쪽 빵에도 머스터드 소스를
꼼꼼히 발라줍니다.
“물론 입을 다문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었지만.”
채소가 빵 위에 차곡차곡
쌓여 층을 이룹니다.
“진짜 이유는 뭐죠?”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한곳을
응시하던 모르모트 씨가
나직하게 읊조립니다.
“녀석이 가장 믿고 따르던
인간이 녀석의 몸에 처음으로
주사를 꽂았소.”
핑크빛을 띠던 연어는 냉기가
가실수록 피처럼 붉어집니다.
“일주일 동안 녀석은 지독하게
아팠지요. 일어나지도 못하고
말도 하지 못했소. 별일도
아니었지. 그렇게 죽어가는
동물을 하나둘 본 게 아니니.”
이름처럼 연꽃이 피는 것 같군요.
“당연히 죽을 줄 알았는데
기어이 살아내더군. 그런데
이후로 입을 딱 닫아버렸지.”
“흠.”
“인간을 따르지 않는
비글이라는 건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거듭 그 꼴을 당하고도
또 꼬리를 흔들며 인간에게
달려드는 녀석들이 대부분이거든.
하지만 녀석은 달랐소.
그날 이후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인간에게 절대 꼬리를
흔들지 않았지.”
흥미롭군요.
얇게 썬 연어를 주름처럼 접어
채소 위에 올려놓으며 저만치
멀리 있는 비글을 살펴봅니다.
어두운 눈동자 속에는 검은빛밖에
없어 속내를 짐작하기 쉽지 않군요.
“어떻소, 내 얘기가? 들을
만합니까?”
“손님의 이야기라기보다는
비글 씨의 이야기 같습니다만.”
“뭐, 그렇긴 하지.”
뾰족 돋아난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모르모트씨가 동의합니다.
“하지만 내 얘기이기도 합니다.
실험실의 동물에게는 다른 형태의
삶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거든.”
다른 빵에도 연어를 모두
올려놓은 뒤, 생각을 바꿔 다시
칼을 집어 듭니다. 아무래도
속재료는 풍성한 편이 좋겠지요.
연꽃 연어를 조금 더 넣어야겠습니다.
두툼하게 썬 연어들이 다시
도마에 차곡차곡 쌓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실험실이 아니라
여기에 있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이번에는 어린아이처럼 빙그레
웃으며 모르모트씨가 묻습니다.